86이 10년 만에 2세대로 돌아왔다. 코너에서 뒤를 조금씩 흘리는 ‘스릴 만점’ 주행감은 GR86의 가장 큰 매력. 그간 약점으로 지적받던 엔진은 덩치 키우며 출력을 보강했다. 변속기는 요즘 차에서 보기 드문 6단 수동. 지난 86 구매자의 90% 이상이 수동변속기를 택했기에 이번엔 자동변속기 모델만 들여왔다. 어른들의 장난감, GR86은 트랙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Verdict>
10년 만에 돌아온 타쿠미의 애마. 기본에 충실한 진짜 스포츠카.
Good
- 소형, 경량, FR, 출력 높인 박서엔진
- 10년 전보다 싼 가격
Bad
- 실내 디자인은 여전히 올드하다
- 이미 올해 사긴 글렀다
<Competitors>
- 현대 벨로스터 N, 아반떼 N : 빠르고 재밌고 자극적인 스포츠 모델. 각종 장비도 풍부하다. 대신 인위적인 배기 소리는 에러.
확 바꾼 외모, 편의성 높인 실내
1세대 모델과 비슷한 구석을 찾기 어렵다. 슬쩍 봐도 형제차 스바루 BRZ와 똑 닮았다. 둘은 큰 뼈대만 공유하는 형제차가 아닌, 디자인까지 공유하는 사이다. 그렇다 보니 토요타만의 디자인 특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G 메시 그릴과 앞 범퍼 디자인 일부가 거의 유일한 차이다. 실내도 토요타, GR 엠블럼을 제외하면 모든 부분이 같다.
앞 모습은 둥글둥글한 헤드램프와 낮고 긴 보닛 덕분인지, 재규어 F-타입 쿠페가 떠오른다. 이전에는 가운데로 쪽 찢어진 헤드램프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웠는데, 2세대는 보다 부드럽고 상냥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ㄴ’자 주간주행등은 범퍼 좌우 ‘ㄱ’자 장식과 대조를 이룬다. 범퍼 그리고 아래쪽 립은 상당히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옆쪽은 전형적인 2도어 쿠페다. 길이 x 너비 x 높이는 4,265 x 1,775 x 1,310mm로, 이전보다 25mm 길고 10mm 낮다. 휠베이스는 2,575mm로 5mm 늘었다. 길이가 BMW M2보다도 20cm가량 짧을 만큼 컴팩트하다. 휠은 17인치가 기본이며, 프리미엄 트림에는 18인치를 끼운다. 타이어 너비는 앞뒤 모두 215mm로 차체 크기와 무게, 출력 등을 감안하면 적당해 보인다.
테일램프는 ‘ㄷ’자 형태로 역시 이전보다 둥글고 부드럽게 디자인했다. 트렁크를 가로지르는 까만 바는 좌우 테일램프와 만나며 수평적 디자인을 강조한다. 펜더는 불룩하게 솟아 전형적인 스포츠카 이미지를 전달한다. 스포티한 디자인의 대구경 파이프는 양쪽에 하나씩 마련했다. 트렁크는 입구도 좁고 기본 용량도 크지 않다. 대신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여분 타이어 4짝 정도는 적재할만한 공간이 나온다.
실내는 신형답게 디자인을 손보고 편의성은 개선했다. 다소 올드하지만 스티어링 휠과 센터페시아, 대시보드 등 대부분 영역을 새로 꾸몄다. 디지털 계기판은 7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는 8인치 크기다. 투박한 글씨체와 달리 반응성이 괜찮고, 전 트림에 유선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한다. 좌우측 송풍구는 터빈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냉난방 다이얼에도 디스플레이를 심었다. 센터콘솔 암레스트는 높이를 낮춰 변속 시 팔꿈치가 걸리는 일을 줄였다. 대부분 새로 디자인했지만, 주행 안전장치 및 트랙 모드 버튼, 열선 시트 버튼은 10년 전과 똑같다.
시트는 버킷 형태로 스웨이드와 가죽을 섞었다. 몸을 잡아주는 지지력도 좋고 쿠션감도 적당하다. 트랙에 오는 길이 심심하지 않도록 스피커는 8개를 넣었다. 안전 사양으로 사각지대 감지 모니터, 후측방 경고 시스템, 스티어링 연동형 헤드램프 등도 제공한다. 다만, 위 모든 옵션은 프리미엄 트림에서만 누릴 수 있다. 2+2 시트 구성의 뒷좌석은 성인과 아이 할 거 없이 타기 좁아, 짐 공간으로 사용하는 편이 낫다.
순수한 정통 스포츠카는 바로 이런 맛
스포츠카, 아니 자동차라고 함은 뒷바퀴굴림이 기본이다. 조향은 앞바퀴가 구동은 뒷바퀴가 담당하는 방식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앞바퀴가 조향과 구동을 함께 감당하면, 코너에서 언더스티어로 큰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GR86은 FR 구조로 엔진은 앞쪽, 구동축은 뒤쪽에 위치한다.
낮은 무게 중심 역시 기본이다. 내연기관 차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 중 하나는 엔진이다. 수평대향 엔진(박서엔진)은 엔진 중심을 낮게 위치시킬 수 있어 저중심 설계에 유리하다. 국내 시판 중인 승용 모델 가운데 수평대향 엔진을 얹은 차종은 포르쉐 911과 718 그리고 GR86이 전부다. 이 중 자연흡기 엔진은 718 박스터 & 카이맨의 GTS 4.0 버전과 911 GT3, 그리고 GR86뿐이다.
작고 가벼운 무게는 스포츠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크고 무거운 차는 코너에서 둔한 움직임을 보인다. 직선 주로에서는 빠르겠지만, 코너에 들어서면 작고 가벼운 차에게 꽁무니를 잡히기 마련이다. GR86은 작은 크기일 뿐 아니라 1,300kg이 채 안 되는 가벼운 몸무게를 자랑한다. 또, 배기량을 400cc 늘렸음에도 경량화를 통해 이전과 거의 동일한 엔진 무게를 구현했다. 소형, 경량, FR, 수평대향 엔진. GR86은 순수한 정통 스포츠카로 분류하기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클러치 감각은 가벼워 변속 잦은 일상 주행에서도 부담 없을 듯하다. 브레이크, 가속 페달 위치는 적당히 가까워 오른발을 빠르게 옮기기 좋다. 6단 수동 변속기는 제 단수에 쏙쏙 잘 들어갈 뿐 아니라 기어비도 적당하다. 과거 트랙에서 2~4단을 주로 썼던 것과 달리, 신형은 2단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도 인제 트랙을 완주할 수 있다. 그만큼 기어비가 적절히 나눠져있고, 토크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코너에서 2단을 맞물리는 경우 뒷바퀴에 슬립이 일어날 정도다. 최대토크는 25.5kg.m로 4.6kg.m 올랐다. 발현 시점 3,700rpm이다.
2.4L로 몸집 키운 엔진은 27마력 올라 최고출력 231마력을 낸다. 0-100km/h 가속 시간은 6.3초로 이전 세대보다 1초 이상 빠르다. 물론 최신 스포츠카들과 비교하면 느린 수치다. 하지만 GR86은 빠른 속도로만 경쟁하는 모델이 아니다. 진정한 운전 재미는 직선이 아닌 곡선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가속이 느린 건 또 아니다. 640m의 긴 직선로에서 400cc 늘린 배기량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스포티한 박서엔진 배기음 역시 여전하다.
코너에서 움직임은 약 오버스티어 성향이다. 욕심내면 꽁무니를 조금씩 흔든다. 대신 과도한 진입 속도로 언더스티어가 발생해도, 엑셀링 및 스티어링 조타만 적절하게 한다면 부풀은 곡선을 금세 가라앉힐 수 있다. 대신 언제든 오버스티어가 생길 수 있으니, 과격한 스티어링 조작이나 변속 등의 움직임은 지양하는 편이 좋다.
400~500마력 혹은 그 이상의 고출력 모델들은 트랙에서 다루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231마력의 만만한 출력은 운전자로 하여금 자신감 있는 주행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실제 슬립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자세를 바로잡기 쉽다. GR86은 운전자의 개입 여지를 크게 열어뒀지만, 동시에 최소한의 안전도 겸비했다. 스포츠 모델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반길만한 대목이다.
고깔 사이를 질주하는 슬라럼 테스트도 진행했다. 에어로 파츠와 퍼포먼스 파츠를 모두 넣은 모델과 순정 모델을 번갈아 타며 차이를 느꼈다. 짧은 테스트로 차이를 크게 느낄 순 없었지만, 트랙 주행을 염두에 둔다면 퍼포먼스 파츠는 넣는 편이 좋아 보인다. 퍼포먼스 파츠는 엔진룸에 댐퍼가 달린 스트럿바, GR 브레이크 패드, 멤버 보강재 중 선택 가능하다. 가격은 셋을 합쳐 200만 원 이하로 예상하며, 정확한 가격은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GR86은 시종일관 편안했다. 매끄러운 트랙을 주행할 때도, 불룩 솟아오른 연석을 밟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바퀴가 계속해서 지면에 붙어있는 느낌이었고, 스티어링 휠과 시트로 전해지는 진동은 적었다. 이는 일반 스포츠카보다 부드럽고 여유롭게 세팅한 서스펜션 덕분이다. 대개 고성능 스포츠카의 경우, 서스펜션 댐핑 범위가 짧아 트랙 연석 등에서 한계점을 쉽게 넘긴다. 이 경우 바퀴가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운전 피로도는 증가하고 타이어 접지력은 낮아질 수 있다. GR86은 트랙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도 꽤 편안하게 달릴 수 있을 듯하다.
유지비 적은 스포츠카, 스탠다드 트림 추천
GR86은 스포츠카의 기본을 잘 다듬은 모델이다. 특정 부분에서 매우 특출나진 않지만, 정통 스포츠카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또, 입문자에게 중요한 건 유지비다. 자동차로 트랙 주행을 즐기려면 꽤 많은 돈이 든다. 자동차 값이 다가 아니다. 트랙 주행을 위한 튜닝비, 트랙 주행 요금, 유류비, 각종 소모품 정비비 등 돈 드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GR86이 가진 무기가 여기서 제대로 드러난다.
우선 타이어다. 215/45R17, 215/40R18 사이즈 타이어는 구하기가 쉽다. 또, 고성능 타이어라 할지라도 가격이 저렴하다. 시승차에 끼워진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의 경우, 위 사이즈 타이어 가격은 각각 24만 원, 27만 원 선이다. 만약 너비가 증가하거나 직경이 늘어나면, 가격은 급격하게 올라간다. 같은 모델 245/40R19 사이즈 타이어는 39만 원을 호가한다. 타이어 소모가 매우 많은 트랙 주행 특성상, 교체 비용에 대한 부담은 훨씬 커진다.
주유비도 문제다. 취급점마다 다르지만, 고급유와 일반유 가격차는 리터 당 200원가량이다. GR86은 일반유 사용 가능한 몇 안 되는 스포츠카다. 연료 소모가 큰 트랙 주행에서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이 밖에 다른 부품들도 고성능 모델들에 비해 저렴하다. 비교적 큰돈 들이지 않고도 갖고 놀 수 있는 진짜 장난감인 셈이다.
가격은 스탠다드가 4,030만 원, 프리미엄이 4,630만 원이다. 여기에 아까 설명했듯 에어로 & 다이내믹 파츠를 추가할 수 있다. 프리미엄 트림에는 18인치 휠, 스웨이드 버킷 시트, 8개 스피커, 안전 옵션 등이 추가로 들어간다. 하지만 스탠다드 트림만 해도 편의 및 안전 장비가 충분하고, LSD나 벤틸 디스트 브레이크 등의 장치들도 모두 들어간다. 입문형 스포츠 모델을 찾는다면, 스탠다드 모델에 퍼포먼스 패키지만 추가하는 걸 추천한다.